본문 바로가기

나/필사

[싯다르타] 싯다르타의 각성

내가 나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은, 싯다르타가 여전히 내게 낯설고 알 수 없는 존재인 것은,
하나의 원인, 단 하나의 원인에서 유래한다.
즉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불안을 가졌고, 나에게서 도피했던 까닭이었다!
나는 아트만을 추구했다. 브라만을 추구했다.
나는 알지 못하는 자아의 심부에서 모든 층의 핵을 찾아내려고,
아트만을, 생명을, 신성을, 궁극의 것을 찾아내려고, 나의 자아를 토막내어 그 껍질을 벗겨버리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하여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 싯다르타 제 1부 각성 중

 

최근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있는데, 이 문장이 왜인지 모르게 가슴에 와닿았다.

 

나는 모든 것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가진 불편한 감정과 생각들을 전부 지배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많이 고민하고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또 불편한 감정들에 둘러쌓여있었다.

 

또 한번 깊은 곳에 숨어있는 내 자신과 대화를 시도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이 나거나 화가나면 말을 못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기분 나쁜 일 있으면 바로 말하는 성격이지"

물론 나 자신을 속이면서 주변사람들도 함께 속였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민하며 내 자신과 멀어졌다.

인정하기까지가 정말 오래걸렸던 것 같다.

 

친구가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솔직하게 말했을 때,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

이유를 모르고 허공을 헤메고 있었을 때,

나의 무의식은 사실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왜 나는 불편한 감정이 들면 상대방을 위해서 표현을 하지 않는데,

왜 너는 그렇게 표현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

 

그림자는 늘 나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나는 애써 모른척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솔직하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기분이 나빠도 상대방을 위해서 참았다.

 

그렇게 나를 속였다.

 

이제는 깨달았다.

그렇기에 내가 더 충만해졌다.

나에 대한 확신이 조금씩 더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 솔직하게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친구들에게도 자비를 베풀 수 있을 것 같다.

 

왜 저 문장을 읽는데 이런 일들이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라는 부분에서 공감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헤르만 헤세의 소설. 유복한 바라문 가정에서 태어난 주인공 싯다르타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존재이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원천이지만 자기 스스로에게는 기쁨을 주지 못한 채 내면에 불만의 싹을 키우기 시작하고, 결국 친구 고빈다와 함께 집을 떠나 사문 생활을 시작하는데... 동서양의 정신적 유산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일종의 종교적 성장소설이다.
저자
헤르만 헤세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02.01.20

' > 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스트 p.216] 성실성  (0) 2024.07.29
[페스트 p.177] 성선설과 미덕  (0) 2024.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