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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필사

[페스트 p.177] 성선설과 미덕

인간은 악하기보다는 차라리 선량한 존재지만 사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들은 다소간 무지한 법이고 그것은 곧 미덕 또는 악덕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자기가 모든 권리가 있다고 믿고서, 그러니까 자기는 사람들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따위의 무지의 악덕인 것이다.
페스트 p.177

 

위의 문장은 타루가 리유의 보건대에 합류하면서 보건 업무에 대한 생각을 카뮈가 서술하면서 나온 내용이다.

 

보건 업무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될 경우 생기는 생각들의 차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게 표현되어 있던 내용이 있어서 정말 놀랐고 한편으로는 너무 재밌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사람은 선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최근에 많은 책들을 읽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사람은 자신을 알아갈수록 선한 본인의 원래 모습을 찾게되고 악은 단순히 자기자신을 모르거나 심각한 결핍에 의해 악한 행동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뮈는 달랐다. "인간은 악하기보다는 차라리 선량한 존재지만 사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라는 문장에서 성악설과 성선설은 사실 의미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다소간 무지한 법이고" 에서 나왔듯 인간은 무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지란 단순히 공부를 못한다라는 개념은 아니다. 나도 이 무지라는 것을 정의할 수 없겠지만 굳이 비슷한 내용을 내 생각을 빌려와 작성해보자면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혹은 "무언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되겠다. 성선설도 그렇고 성악설도 그렇고 결론은 인간은 무지하기 때문에 공부를 해라라는 뜻이니 동양철학을 관통하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덕을 쌓지 않아서 흔히 말하는 실수같은 것들을 한다. 카뮈가 말하는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자기가 모든 권리가 있다고 믿고서, 그러니까 자기는 사람들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따위의 무지의 악덕" 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이 것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 사례는 신림동 칼부림 사건이다. 내가 알기로 신림동 칼부림 사건의 가해자는 본인은 30대에 이룬게 아무것도 없어서 열등감이 들어 살인을 저질렀다라고 포장을 했지만, 카뮈가 말하는 절망적인 악덕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30대에 이룬게 없어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 살인자는 그러지 못하고 본인의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인정을 해버렸으니 말이다.

 

이렇듯 우리는 무지한 존재니 계속해서 자기자신 공부를 해야하는 건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자기 자신을 알게되면 자존감도 올라가고 화도 자연스럽게 줄어드니 말이다. 좋은 점들만 있고 나쁜 점은 없는데 안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페스트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페스트'라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의연히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20세기 문학이 남긴 기념비적인 고전으로 꼽힌다. 무서운 전염병이 휩쓴 폐쇄된 도시에서 재앙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모습이 묘사된다. 인물들은 재앙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태도를 드러내 보인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절망과 맞서는 것은 결국 행복에 대한 의지이며, 잔혹한 현실과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반항임을 이야기한다. 이번 한국어판은 1999년 우리나라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김화영 교수가 새로운 번역으로 선보인다.
저자
알베르 카뮈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1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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